⑧[기후테크 리포트 · 10부작 연재]
"농사 기준으로 다시 설계…한국형 표준에 도전

(전남 고흥)=논 위에 태양광을 올린다는 발상은 이제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영농형 태양광은 대부분 기존 태양광 발전소를 농지 위로 옮겨온 데 가까웠다.
발전 효율을 중심으로 설계된 구조물 아래에서 농사를 짓다 보니, 하루 종일 이어지는 그림자와 빗물이 한곳으로 쏟아지는 낙수 피해, 농기계 작업의 불편, 그리고 울타리를 설치할 수 없는 농지에서의 전기 안전 문제까지 다양한 과제가 뒤따랐다.
전남 고흥군의 한 실증단지는 이런 고정관념을 뒤집는다. 태양광을 농지 위에 올린 것이 아니라, 농사를 기준으로 태양광을 다시 설계한 사례다. 주식회사 유에너지 최태원 대표이사는 "영농형 태양광은 태양광이 주가 아니라 농사가 주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 기준 안에서 설계의 답을 찾다
고흥군 군유지에 조성된 실증단지는 약 3,000여 평 부지 가운데 실제 태양광 구조물이 설치된 면적은 685평이며 설비용량은 105kW다.
685평이라는 숫자는 우연히 정해진 것이 아니다. 현재 영농형 태양광은 정부가 정한 차광률 30% 기준을 충족해야 하며, 이 기준을 적용하면 약 685평 규모에 100kW 안팎의 설비를 설치하는 것이 사실상의 표준 규모가 된다. 다시 말해 고흥 실증단지는 정부 기준을 바꾸려는 것이 아니라, 같은 기준 안에서 설계를 어떻게 바꿀 것인가를 보여주고 있다.
이 부지는 농림축산식품부의 계획생산 정책에 따라 벼농사가 제한되고 사료용 작물만 재배할 수 있는 재생지구이기도 하다. 영농형 태양광 실증과 정부의 농업정책이 하나의 공간에서 함께 운영되고 있는 셈이다.
최태원 대표는 다만 고흥 실증단지를 회사의 최종 표준모델로 규정하지는 않았다. 그는 "고흥 발전소는 유에너지가 연구개발한 영농형 태양광인 고정식 동서향 실증모델"이라며 "전국 최초로 동서향 분산 배치를 적용했다는 의미는 있지만, 이것이 곧 완성형이나 표준형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유에너지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것은 특정 구조물을 보급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 농업환경에 가장 적합한 '한국형 영농형 태양광 표준'을 만드는 일이다. 이를 위해 작물 생육과 발전량, 농기계 작업성, 전기 안전성, 경제성 등을 하나씩 실증하며 설계를 계속 보완하고 있다는 것이다.
같은 차광률 30%, 그러나 그림자는 달랐다
기존 영농형 태양광은 대부분 모듈을 남향으로 길게 배치한다. 발전량을 극대화하기 위한 방식이지만 모듈 아래에는 하루 종일 그림자가 머물게 된다. 그림자의 길이는 계절마다 달라져도 같은 공간은 계속 그늘에 놓인다.

고흥 실증단지는 같은 차광률 30%를 유지하면서도 발상을 바꿨다. 모듈을 남향이 아닌 동서향으로 배치하고, 모듈이 있는 칸과 없는 칸을 바둑판처럼 교차 배치했다.
이렇게 하면 태양의 이동에 따라 그림자가 한곳에 머물지 않고 농지 전체를 짧게 지나간다. 여름에는 모듈 바로 아래에 짧은 그림자가 생기고, 겨울에는 태양 고도가 낮아지면서 그림자가 뒤쪽으로 이동한다. 결과적으로 특정 구역이 하루 종일 그늘에 놓이지 않는다.
최 대표는 "중요한 것은 차광률 30%라는 숫자가 아니라, 같은 30%라도 어떻게 배치하느냐"라며 "작물 입장에서 보면 체감하는 환경은 전혀 달라진다"고 설명했다.
동서향 배치 가능...모듈 기술의 진화
동서향 배치가 가능해진 배경에는 태양광 모듈 자체의 발전도 있다. 과거에는 뒷면이 발전하지 않는 일반 모듈이 대부분이어서 햇빛을 가장 오래 받을 수 있는 남향 설치가 사실상 필수였다. 그러나 최근에는 앞면뿐 아니라 뒷면에서도 발전하는 양면모듈이 보편화되면서 설계의 자유도가 크게 높아졌다.
고흥 실증단지는 구조물 뒤쪽까지 최대한 개방해 양면모듈의 후면에서도 충분히 빛을 받을 수 있도록 설계했다. 오전에는 동쪽 면, 오후에는 서쪽 면이 각각 햇빛을 받아 하루 동안 보다 균형 있는 발전이 가능하도록 한 것이다. 다시말해, '양봉형(Bimodal) 발전 패턴'이다. 유에너지는 현재 이러한 발전 특성을 실증 데이터를 통해 검증하고 있다.

구조물 자체도 달랐다
고흥 실증단지의 차별성은 모듈 배치에서 끝나지 않는다. 구조물 자체 역시 기존 영농형 태양광과 다른 접근을 취했다.
구조물은 폭 7m, 거리 10m 간격으로 배치됐다. 일반적인 영농형 태양광보다 작업 공간을 넓게 확보하면서도 구조물의 인장강도를 높여 패널 하중이 특정 기둥에 집중되지 않고 구조 전체로 분산되도록 설계했다.
기둥을 단순히 굵게 만들거나 촘촘히 세우는 대신 구조물 전체가 하중을 나누어 받도록 설계함으로써 농기계 작업성과 구조 안전성을 동시에 확보한 것이다. 이 같은 설계 덕분에 트랙터와 각종 농기계가 보다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으며, 실제 영농 환경에 가까운 작업 공간을 확보할 수 있었다.
영농형 태양광의 핵심은 '전기 안전'
최태원 대표가 가장 강조한 부분 가운데 하나는 전기 안전이었다. 일반 태양광 발전소는 울타리 안에서 운영되기 때문에 접지선과 전선관을 땅속에 매설하는 지중접지 방식을 사용한다.

하지만 영농형 태양광은 농민이 수시로 드나들며 작업하는 공간이다. '지중 방식'을 적용할 경우 지락이나 이상 전류가 발생했을 때 농지 자체가 위험 공간이 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고흥 실증단지는 이런 이유로 지중접지와 지중관로를 적용하지 않았다. 대신 구조물 사이에 와이어를 설치해 전선을 지상으로 배치하고, 별도의 절연 변압기(TR)를 설치해 한전 계통과 발전설비를 전기적으로 분리했다. 또 인버터와 접속반, 계량기, 통신장비 등을 하나의 함체 안에 통합해 이중 절연 구조를 구현했다.
최 대표는 "영농형에서는 사람이 가장 중요하다"며 "낙뢰나 이상 전류가 발생하더라도 농지로 전류가 직접 전달될 위험을 줄일 수 있도록 설계한 것이 가장 큰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설계는 울타리 없이도 전기안전공사의 안전 기준을 충족하는 기반이 됐다.

빗물까지 농사를 기준으로 설계하다
영농형 태양광에서 또 하나의 문제는 낙수 피해다. 기존 구조에서는 모듈과 모듈 사이로 빗물이 집중적으로 떨어지면서 토양이 파이고 작물이 피해를 입는 사례가 적지 않았다.
고흥 실증단지는 모듈 하나하나를 어셈블리 프레임으로 감싸 빗물이 프레임을 따라 여러 방향으로 분산되도록 설계했다. 빗물이 한곳에 집중되지 않도록 함으로써 토양 유실과 작물 피해를 줄이는 것이 목적이다.
기술적 완성도만큼 눈길을 끄는 것은 경제성이다. 유에너지 구조물의 조달 등록 가격은 약 200만 원 수준이다. 반면 기존 연구개발 방식으로 제작된 영농형 구조물은 350만~500만 원 수준에 이르며, 사업화 이후에도 250만 원 이하로 낮추기 쉽지 않다는 것이 회사 측 설명이다.
유에너지는 기둥 자체를 무조건 키우는 대신 구조물의 하중 분산 설계를 통해 필요한 철강 사용량을 줄였다. 풍속 초속 50m를 견디도록 구조 계산을 완료했으며, 특허와 조달 등록도 마쳤다. 앞으로 생산 규모가 확대되면 지역에 따라 160만~180만 원 수준까지 원가를 낮출 수 있을 것으로 회사는 전망하고 있다.

실증에서 표준으로
유에너지는 현재 고흥농업기술센터와 광양농업기술센터 등과 협력해 지역별 특용작물에 적합한 영농형 태양광 실증을 확대하고 있다. 구조물을 보급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작물별 생육 데이터를 축적하고, 지역 여건에 맞는 운영 방식을 검증해 나간다는 계획이다.
해남과 영암 등지에서도 대규모 영농형 태양광 사업을 제안하고 있으며, 주민 수용성을 높이고 발전 수익이 농민에게 돌아가는 사업 모델도 함께 추진하고 있다. 최 대표는 "영농형 태양광은 발전량만 높인다고 성공하는 것이 아니다"라며 "농민이 불편 없이 농사를 지을 수 있어야 하고, 농사가 잘되어야 비로소 영농형 태양광도 성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태양광을 농지 위에 올린 것이 아니라 농사를 기준으로 태양광을 다시 설계해야 한다"며 "농촌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는 생각으로 앞으로도 영농형 태양광 기술을 계속 발전시켜 나가겠다"며 의지를 보였다.
[탄소중립투데이 박형석 기후테크 리포트기자]
출처 : 탄소중립투데이(http://www.net-zero.kr)